밀가루 담합에 역대급 과징금, 장사하는 입장에선 남 얘기 아니다

이 정도면 단순한 가격 협의가 아니라 시장을 흔든 일이다

장사해보면 안다. 원재료 가격이 한 번 움직이면 그 여파는 순식간이다. 밀가루는 빵집, 분식집, 제과점, 라면 관련 업종까지 다 걸려 있는 핵심 재료다. 그런데 국내 제분사 7곳이 무려 6년 동안 가격과 물량을 맞춰 움직인 정황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과징금만 총 6710억4500만원이다. 담합 사건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하니, 이건 그냥 “조금 올렸겠지” 수준이 아니다. 시장을 통째로 흔든 일이다.

더 눈에 띄는 건 시기다. 국제 원맥 가격이 오를 때는 인상폭과 시기를 맞췄고, 반대로 원가가 내려갈 때는 인하를 최대한 늦췄다. 이게 현실이다. 자영업자들은 원가 오르면 바로 메뉴판이 흔들리는데, 대형 제분사들은 담합으로 그 타이밍까지 조절한 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빵 한 조각, 국수 한 그릇, 과자 한 봉지가 다 더 비싸진다. 업주는 업주대로 마진이 눌리고, 결국 부담은 아래로 내려온다.

시장점유율 90%에 가까운 과점 구조가 만든 허점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몇몇 회사가 나쁜 짓을 했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7개 제분사가 국내 B2B 밀가루 시장의 약 87.7%에서 88%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구조면 사실상 몇 곳이 손만 맞춰도 시장 분위기가 달라진다. 경쟁이 살아 있어야 가격이 제대로 서는데, 과점 시장에서는 담합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업체는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이다. 이들은 농심, 팔도, 풀무원 같은 대형 수요처는 물론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까지 대상으로 가격과 물량을 조율한 것으로 조사됐다. 총 24차례에 걸쳐 담합이 이뤄졌고, 대표자급과 실무자급 회합도 55회나 가졌다고 한다. 이 정도면 우연이나 관행으로 보기 어렵다. 짜고 치는 구조가 꽤 오랫동안 굴러갔다고 보는 게 맞다.

6년 동안 24차례, 숫자가 말해주는 담합의 방식

공정위 자료를 보면 담합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이어졌다.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밀가루 공급가격과 물량 담합이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 담합이 5차례였다. 겉으로는 개별 회사가 경쟁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큰 틀에서 맞춰 움직인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아래처럼 정리해보면 흐름이 더 분명하다.

구분 내용
담합 기간 2019년 11월 ~ 2025년 10월
담합 횟수 총 24차례
회의 횟수 총 55회
시장점유율 약 87.7%~88%
과징금 총 6710억4500만원

이런 표를 보면 감이 온다. 담합은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니라 반복된 시스템이었다. 대표자급이 방향을 잡고 실무자급이 세부를 맞추는 식이었으니, 사실상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봐야 한다. 장사판에서도 이런 식으로 다 같이 가격을 맞추면 바로 담합 소리 듣는다. 대기업이라고 다를 게 없다.

원가가 오를 때는 빨리, 내릴 때는 늦게

밀가루의 원재료인 원맥은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그래서 국제 시세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는 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 전달 방식이다. 이번 사례에서는 원맥 시세 상승기였던 2020년부터 2022년 사이에는 원가 상승분을 빨리 반영하려 했고,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인하를 최대한 늦췄다고 공정위는 봤다. 결국 올릴 때는 신속하고, 내릴 때는 미적미적이었다는 뜻이다.

공정위가 공개한 수치를 보면 담합이 시작된 2019년 12월 대비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올랐다. 이런 폭은 자영업자 입장에서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수준이다. 밀가루만 오르는 게 아니라, 그 밀가루를 쓰는 빵, 면, 과자 가격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는다. 결국 소비자는 더 비싸게 사고, 업주는 매출은 그대로인데 원가만 뛰는 구조에 묶인다.

📊 담합 기간 중 가격 상승 폭

최소 상승 폭 ■■■■■■■■■■■■■■ 38%
최대 상승 폭 ■■■■■■■■■■■■■■■■■■■■■■■■■■■■■■■■■■ 74%

역대 최대 과징금과 가격 재결정 명령, 그런데 끝난 게 아니다

공정위는 7개 제분사에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업체별로 보면 사조동아원이 1830억원으로 가장 많고, 대한제분과 CJ제일제당 등도 천억원대 과징금을 받았다. 공정위가 관련 매출액을 약 5조6900억원에서 5조8000여억원 수준으로 본 것도 눈길을 끈다. 법 위반 규모를 상당히 크게 봤다는 의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정위는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내렸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정상 수준으로 다시 정하라는 조치다. 2006년 밀가루 담합 이후 20년 만에 다시 가격 재결정이 적용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당시에는 가격이 약 5% 인하된 전례가 있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면, 빵, 과자 등 국민 먹거리의 핵심 원료이자 대표적인 국민 생활 품목인 밀가루의 가격 등을 놓고 시장점유율 90%에 이르는 제분사들이 약 6년에 걸쳐 은밀하게 실행한 담합을 적발해 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겠습니다.”

또 앞으로 3년간은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1년에 두 차례 보고해야 한다. 이건 그냥 벌금 한 번 내고 끝나는 사안이 아니라, 이후 가격 움직임까지 계속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장사판에서 원가관리 제대로 안 하면 금방 티가 나는 것처럼, 공정위도 이제는 추적을 더 촘촘히 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민생 품목 담합은 결국 현장으로 돌아온다

밀가루 담합이 더 뼈아픈 이유는, 이게 단순한 기업 간 거래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빵집 사장은 밀가루 값이 오르면 빵값을 안 올리고 버티기 어렵고, 분식집은 면값과 반죽 원가가 동시에 흔들린다. 소비자는 “왜 또 올랐냐”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올리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구조가 된다. 이게 현실이다.

공정위가 이번 사건을 빠르게 처리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조사 착수 후 약 7개월 만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내렸고, 전원회의 심의가 끝나기 전에 공개 브리핑까지 했다. 그만큼 민생 침해 성격이 크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이런 품목은 체감 물가에 바로 들어온다. 정부가 물가 안정 보조금까지 투입한 시기에도 담합이 이어졌다는 점은, 업계의 책임이 더 무겁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늘 같은 생각이다. 원가가 올라가는 건 시장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서로 맞춰서 오래 끌고 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경쟁이 아니라 짬짜미로 버틴 가격은 결국 언젠가 들통난다. 이번 밀가루 담합 사건은 그걸 아주 크게 보여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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